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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속 매난국죽과 같이 굳건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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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일꾼
  • 16-05-30 14:10
  • 1,7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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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속 매난국죽과 같이 굳건한 삶
 
사군자교실 참여자 고봉주 님과의 만남
 
인터뷰 · 정리 : 지역참여팀 손단비
- 1번 써졌지 1번? 이거 고봉주 씨가 관리해요.
- 하하. 내가 왜 1번이예요?
- 왜긴~ 맨 먼저 오니까.
 
금요일 오전 8시 10분. 대부분의 직원들도 출근 전인 시간.
복지관 3층 문화교실에서는 스스로의 꿈이 담긴 하루를 펼치는 분이 있습니다.
 
출근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실에 들어오는 참여자들을 맞이하는 듬직한 모습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금요일 아침 8시 10분, 1등으로 도착해 사군자 공부 중인 고봉주 님 순서대로 오는 다른 참여자들을 맞이합니다.
 
 
 
장애가 찾아오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큰 대기업에서 건축자재 관련 디자이너로 일했던 고봉주 님. 장인어른이 하던 문구 관련 도매상을 물려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IMF에 부딪혔습니다. 곧, 장애가 찾아왔습니다.
 
“어린이날에 아들들을 아부지, 어머니께 인사 시킨다고 데리고 가는데 머리가 그렇게 아팠어요. 단순하게 두통약 먹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안 나아지더라고. 본가는 어떻게 도착하고 밥도 먹고 청양 처갓집을 가려고 일어났어요. 차를 끌고 갔는데 장인이 오랜만에 왔다고 술을 주시네 소주를. 건배 딱 하고서 한 잔 딱 마셨는데 옆으로 쓰러졌어.”
 
“소리도 다 들리고 눈에도 다 보이는데 말을 못해. 말이 안나와. 끔찍한 기억이야 나는”
 
뇌출혈이었습니다. 급히 서울 큰 병원을 찾아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그렇게 몇 년을 병원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왼쪽 편마비가 남았습니다.
 
 
 
서예. 사군자. 사람들
 
시작은 서예였습니다. 어느 봄 날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상업학교를 나왔는데 학교에서 애들 나가는 이력서를 내가 다 써줬어요. 전 학년 것을 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거죠. 재활병원에서 작업치료사랑 상담할 때 이 얘길 했더니 ‘서예를 한 번 해보시죠’ 하는 거예요.“
 
처음엔 코웃음치고 지나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서예를 하셨지만 그럼에도 안했던 서예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담당 작업치료사가 주민센터 서예교실에 덜컥 등록을 시켜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사군자도 만났고, 좋은 인연들이 닿았습니다.
 
“너무 재미가 있더라고 글씨 쓰고 그러는 게. 하루에 여덟 칸 짜리 다섯 장 씩 40글자를 썼어요. 서예교실 안가는 날은 무조건 새벽에 일어나서 할당량을 채우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 2년 했더니 내가 느는 게 보이더라니까. 획이 처음에는 잘 안 나가요 이게, 몸도 뻣뻣해가지고. 그런데 그게 자연스럽게 이렇게 꺾어지더라고”
 
제가 미술대학을 나와서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거든요. 기왕 서예를 하는 김에 사군자도 배워야겠다 했죠. 재활병원에서 애기 했더니 ‘아버님 요- 위에 복지관에 사군자 교실 있어요~’그러는 거야. 그래서 또 딱 올라왔어요. 처음에 왕수정 선생님을 만나서 접수를 했죠. 그렇게 다니기 시작했어요.”
 
“서예교실 등록시켜준 작업치료사 선생도 처음 만났을 때는 처녀였는데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애도 있어요. 결혼하고 나서 내가 다산을 기원하는 기념으로 포도를 내가 그려서 선물해줬거든요 그 선생한테. 포도를 내가 배웠거든요 얼마 전에. 그걸 바로 써먹었지. 다행이도 포도를 그려주고 집에 가져가서 붙여놓자마자 임신이 됐대요. 배가 이렇게 또 튀어 나왔어 조금. 사군자가 이렇게 좋게도 쓰는 거예요.”
 
 
 
복지관 3층 복도에 걸려있는 사군자 교실 참여자들의 작품 진지하게 사군자를 그리는 참여자들의 모습
 
 
 
 
큰형, 아버지. 그리고 아들
 
8시. 1등으로는 고봉주 님보다도 한 발 먼저 복지관에 도착해 형과 형의 동료들이 앉을 책상 자리를 만지는 동생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 분신이야. 잘 때도 내 옆에서 자고.”
 
“제가 쓰러졌을 때 우리 어머니가 아들 셋을 딱 불러놓고. ‘큰형이 이렇게 돼서 쓰러졌는데 너희들 정신 똑바로 챙기고 둘째 너 직장 그만두고 형한테 붙어. 막내 너는 생활비 내놔 집으로.’ 그렇게 한 마디 하고 끝이야. 우리 어머니는 더 이상 얘기 안 해. 지금까지 5년 동안 동생들이 한 마디도 안 해. 형제들도 그렇지만 사실 어머님이 대단하시죠.”
 
“저는 아들이 둘 있는데 애들 한창 공부해야 될 때 내가 쓰러졌어요. 그게 제일 미안하지 나는. 큰 애가 중3때 내가 쓰러졌거든요? 큰애는 좀 여성적인 성격이 좀 많아요. 덩치는 이렇게 좀 크지만 섬세한 면이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들어갔는데 공부를 안 한대. 애들 엄마 말로는 아부지가 갑자기 죽을까봐 불안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거지. 원래 공부 되게 잘했었거든 애가.”
 
“작은 놈은 성격이 또 반대야. 작은 놈은 바짝 말랐어. 말라가지고 남들이 이렇게 보면 뼈 밖에 없어 몸에. 작은 애가 이제 고3인데 이 놈은 어떤 길로 나갈지 모르겠어. 얘는 수학을 잘해. 국어를 못하고. 공대를 가야되는데 모르지.”
 
“내가 아부지가 되고 나니 우리 아부지 생각도 더 자주 나요. 우리 아버지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어요. 아버님이 서예도 하셨어요. 서예는 워낙 잘 하셔서 엄청나게 큰 상도 많이 받으시고 대관해서 전시회도 하시고 제법 유명하신 분이셨죠. 나보고 맨날 그 양반이 나도 서예 좀 하라고 그랬거든요. 내가 그랬어 ‘아부지 무슨 디지털시대에 서예를 하고 앉아있냐고’ 내가 나중에 아파서 이렇게 쓰게 될 줄 모르고.
 
“서예 시작하고 나서 아부지 꺼 있으면 좀 달라그랬더니 돌아가시고 서예 관련한 자료, 붓 이런거 다 버렸대. 기가 맥히더라고 그 때 아버지 살아계셨을 때 배웠으면 훨씬 지금보다 빨리 늘었겠지 그럼”
 
“나중에는 근처 복지관에 서예 강사로 나가셨어요. 그래서 내가 이 복지관에 오면 여기 선생님도 그렇고 꼭 아버지 뵙는 것 같아요. 마음이 좀 아려. 아린 부분이 있어. 아버지 생각이 정말 많이 나요”
 
 
 
사군자 관련 자료를 공부 중인 고봉주 님
 
 
 
새로운 꿈을 꿉니다.
 
“사군자는 그림도 그림이지마는 그 정신을 배워가는 거예요 저희가. 매난국죽. 서리에도 추위에도 잘 견디고 꽃을 피우고 굳건히 낙심하지 말고 굳건히 사시라는 거예요. 사군자의 매력. 그 정신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복지관이랑 사군자가 나한테는 ‘노아의 방주’ 같은 역할을 했어요. 복지관에 와서 제가 가장 하고 싶어 했던 사군자를 많이 배웠어요. 또 그 꿈을 키울 수 있게 됐어요. 그전에는 전혀 꿈이 없었거든요. 왜냐면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됐었고 실제로. 서예를 하면서 그리고 허무맹랑했던 사군자를 배우면서 아 이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 더 생기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나한테는 정말 꿈이지.”
 
“진짜 나를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그런 곳이야. 여기는 복지관이고 사군자를 배우면서 한 편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림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고민하는 모습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사군자 연습 중인 참여자들
 
 
 
 
오랜 습관으로 아침 6시면 눈을 뜨고, 7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는 고봉주 님.
 
그 유별난 성실함과 무뚝뚝한 말투에 몇 마디 안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살아온 시간들을 힘 있는 목소리로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매난국죽과 먹내음이 유독 어울리는 굳건한 삶.
여러 감정과 열정이 아득하고 순수하게 스치는 눈으로 그 삶을 마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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